• 이형욱 목사

시편 94편 3, 8, 12, 22절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 백성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

시편 94편의 저자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부르는 그 강렬한 호칭속에 시편기자가 처한 상황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듯 합니다. "여호와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취소서"

우리의 처한 환경이, 우리가 속한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우리가 부르고, 의지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낸다고 볼 때에 시편 기자의 이 간절한 부름이 왠지 마음에 다가옵니다. 그는 단지 개인의 억울한 상황이나, 급한 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는 보수하시는 하나님,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영역을 온 세계라 규정합니다.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그렇다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알고, 그 하나님이 온 땅의 통치자 이심을 믿는 시편기자는 왜 이렇게 하나님을 급하게 찾고 있는가? 3절이 그 이유를 밝혀줍니다.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How long, Lord, will the wicked, how long will the wicked be jubilant?" 원인은 바로 "시간"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언젠가는 이 악인들을 시원스럽게 징계하실 것을 알고 있지만, 그 긴 기다림이 그로 기도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편 기자는 그가 참지 못하는 상황들을 나열합니다.

하나님을 대하여 자긍하며, 오만한 말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악한 행위로 인하여 고통받는 주의 백성들 (과부, 나그네, 고아)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지혜를 업신 여기는 그들의 대화에서 그의 분노는 폭발합니다.

"...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생각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하리라'는 말은 하나님이 명철(지혜)이 없으므로 자기 백성들에 대하여 관심도 없고 무엇을 해 줄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비아냥 거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이 세상의 모습이 시편 기자로 하여금 이다지도 다급하게 보수하시는 하나님!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찾도록 만든 것입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눈을 뜨고, 세상에서 고통받는 자들의 모습을 마음에 담으며, 늘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고 살아가려 하는 시편 기자의 모습속에 "의로운 삶"을 보게 됩니다.

목회를 한답시고 교회라는 틀 안에 갇혀 우리 성도, 나의 목회만을 골몰히 생각하는 제 자신은 아닌가 은연중에 이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늘 세상속에 서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고 있음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기다림의 그 시간이 답답하여 How long 을 외쳤던 시편기자가 어리석은 자들의 그 어리석음에 대하여 선포합니다.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 you senseless ones among the people: you fools, when will you become wise?"

마치 이 시편기자의 고백속에 이 땅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듯 보여집니다. How long ~~~ 하나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when will you become wise? 그 악한 자들이 그 걸음을 돌이킬 때 까지입니까?

하나님이 결코 그들의 악한 행위를 보지 못하시거나, 알지못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무관심하거나, 모든것을 판단하실 지혜가 없으시기 때문도 아닙니다. 시편기자는 보수하시는 하나님이 또한 창조주 하나님 이심을 이렇게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열방을 징벌하시는 자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자가 징치하지 아니하시랴" 모든 것을 듣고 보고 아시는 하나님이시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는 반드시 임할것이라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 시편 기자에게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을 요구하신 것입니까? 그가 그 깊은 깨달음을 이 한 문장에 담아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 인간의 인간됨을 그는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고백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 11:33-36)"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는 단지 악인에게 징벌을 내리시는 것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은 자가 복이 있나니" 여기서 징벌이라는 단어는 discipline 으로 악인이 받는 징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한 자들로 인하여 의인이 경험하는 환난, 고통, 어려움을 말합니다.

즉 시편기자는 이 땅 가운데 나타나는 How long~ 의 의미를 깊이 체험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의롭다고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질문과 계속되는 고백속에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 " 고난중에 있는 자의 위로자는 바로 다름 아닌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은 악한 자에게 돌아올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고, 의인에게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 고백할 수 있도록 그의 그 삶 깊이 함께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며 그 일들이 왜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하는지, 고통받는 자들의 모습속에서 아닌 그런 나의 상황속에서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하는지 조용히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 부족한 자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주옵소서! 부요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마음에 깊이 채울 수 있도록 주의 말씀에 담긴 그 역사를 오늘도 깊이 체험케하여 주옵소서! 나에게 허락된 How long ~ 의 시간들을 곰곰히 되씹어보는 은혜의 하루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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