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욱 목사

역대상 15장 2, 13절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하고 //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다윗이 언약궤를 옮기는 이야기가 다시 소개됩니다.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한 치의 오차도, 예외도 없습니다. 가로되 (다윗이 말하되) 레위 사람 외에는 ... 그도 레위 사람이 아니고서는 언약궤를 옮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모든 일에는 사정과 형편이란 것이 있기에 하나님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오랜시간 그 언약궤가 방치되어 있었고, 아무도 그것에 신경쓰지 않았기에 그것을 옮기는 절차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 깊은 사정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웃사의 죽음을 통하여 다윗이 무엇을 깨달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 바로 이것입니다.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실패와 넘어짐이 이끄는 방향은 한결 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돌아가 그 앞에 서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것도 귀하고그래서 그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도 복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당신의 입으로 발한 그 말씀대로 우리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만으로는 신앙이 세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시겠지! 하나님도 이것은 아시겠지가 신앙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보고, 배워 그대로 행하면 되는것일까요?


다윗의 이 고백이 자꾸 머릿속에 맴 돕니다.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왜 역대상 기자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고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규례대로 그것을 예외없이 행하면 믿음일것 같은데 ... 역대상 기자는 우리로 무엇을 보게 하는 것입니까? 신앙이란 말씀대로 행하는것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요? 신앙이란 "행함"의 일이기 전에 "관계" 인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은 아닐까요!


기록된 말씀대로 행하는 문제라면, 거기에는 인격과 인격이 어우리지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것입니다. 엄한 명령만 있지 사랑의 관계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신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아 묻기 시작하면 바로 그곳에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관계가 생겨납니다.


"...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 15:14-15)"

예수님은 당신과 우리 사이를 종의 관계에서 친구의 관계로 확장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생각과 확신속에서 나오는 나의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말씀 안에서 마음과 마음이 어우러져 드러나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언약궤 이야기 속에서 누구를 기억합니까? 실패한 다윗입니까! 아닙니다. 그 실패를 통하여 결국 ...


언약궤를 예루살렘성에 옮겨오고, 그 앞에서 춤추는 다윗을 기억합니다. 성경은 다윗이 언약궤 앞에서 춤을 추었다고 ... 기록할까요?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 신앙이란 인격이신 하나님 앞에 드러나는 순종의 삶입니다.


주님! 오늘도 주신 말씀을 가지고 이 길 위에서 주님께 묻고, 당신과 대화하며 걷기를 진정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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