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동일한 내용을 소개하는 사무엘하 24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똑같은 내용이지만 바라보는 각도가 다릅니다. 역대기 기자는 인구조사가 사탄의 유혹으로 비롯되었다 보지만, 사무엘서 기자는 이 모든 일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악한 자의 악까지도 당신의 섭리가운데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과 사탄이 주목했던 첫 대상은 다윗이 아니라, 마치 이스라엘 전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물론, 다윗의 잘못이 곧 이스라엘의 잘못이고, 이스라엘의 죄악이 곧 그의 죄악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다시 분노하신 것일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시" 라는 접속사로 보건데 늘 반복되는 어떤 죄악같이 보입니다.
계속되는 전쟁의 승리와, 열방가운데 강력한 통치자로 세워져 가는 다윗과 이스라엘입니다. 점점 더 그들의 목이 곧아질 것은 불을보듯 뻔합니다. 긴장이 풀리고, 여유가 생기면 당연히 주의는 분산됩니다. 호기심도 많아지고, 유혹도 거세어 질 것입니다.
밧세바와의 간음, 그의 남편 우리아를 교살한 것도 결국 이러한 모습의 연장선상에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다윗이 인구조사를 시키는 대상은 군 사령관 요압입니다. 군사적 목적을 내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요압은 다윗의 여동생 스루야의 첫째 아들로서 그녀의 세 아들 요압, 아비새, 아사헬은 다윗의 용사들 입니다. 그중에서도 요압은 탁월한 싸움꾼입니다. 누군가를 포용하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철저히 힘을 중심으로 사는 자입니다.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에게 죽임을 당하자 다윗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를 죽여 동생의 원수를 갚는 장본인입니다. 다윗은 그런 요압에게 인구조사를 시킵니다. 그리고 요압은 이것이 결코 옳지 않은 일임을 다윗에게 전합니다.
"내 주 왕이여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 하니"힘을 우선시하는 장수 조차 다윗의 인구조사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모습인 것을 알아차리는데 어떻게 다윗은 아무 거리낌 없이 이 조치를 내리고 있는지 의아합니다.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를 미혹하는 사탄의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사탄은 미혹의 영입니다. 거짓을 말하고, 이간질 시키며, 영적인 것을 분별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욕망을 부추깁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올무에 걸리면 옴짝달싹 못하고 분별력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마치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을 번뇌케 할 때에' 그가 죽을때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잃어버린채 오직 한 사람 다윗과의 싸움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채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인생인것 처럼 말입니다.
다윗도 어쩔수 없는 인간입니다. 그렇게 신실하고, 가는 곳 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더욱 강력해져 가는 다윗의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 잠시 손을 멈추시니 다윗은 그져 평밤한 사람들보다도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탄에 미혹된 다윗에게 불행하게도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었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에게 힘이 있는것, 사탄에 미혹된 자가 힘까지 갖고 있는 것 이것보다 불행한 것이 없습니다. 죄를 멈출수 있는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 그 죄악된 길에서 멈출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개입만이 죄악된 삶을 멈출수 있게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그렇게 보이지 않던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의 개입과 함께 비로서 보여지고, 깨달아 지고, 가슴 깊이 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미혹된 자가 스스로 돌이켜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도 사탄 마귀가 틈틈이 택한 자들의 삶을 둘러봅니다. 누구를 미혹할까! 누구의 눈과 귀를 가리울까! 어떤 자의 삶에 개입할까! 결코 타겟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 사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나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주의 손길이 나를 지키고 돌보고 있음에 감사하며, 사탄 마귀가 끊임없이 택한 자들을 미혹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강권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 (약 4:7-8)"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주 나의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과 십자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오늘을 살아가는 능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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