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욱 목사

역대상 21장 17절

"하나님께 아뢰되 명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내니이다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다윗이 사탄의 미혹에 빠져 시행했던 인구조사! 그 결과는 참혹하리 만치 끔찍했습니다. 요압이 장장 9개월 20일 동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 전역을 돌며 카운트 했던 장정의 숫자가 157만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3일 만에 전염병으로 7만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주신분도 거두어 가시는 분도 오직 한분 하나님이십니다. 내것이라 자랑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요. 내것이 없다 원망하는 것도 철없는 짓입니다. 맡은자들이 구할것은 오직 충성뿐입니다. 죄를 짓는 것과 죄의 사함을 받는 것 사이에는 반드시 댓가가 있습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토록 강력하고, 강렬한 것은 그 사랑이 그의 살과 피로 우리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생명만이 또다른 생명을 잉태케 합니다.


죄에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아래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즉 은혜 아래 살지 못하니 오직 행하는 일이라고는 죄악된 삶의 모습 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한 것은 죄를 고백하는 회개에도 힘이 있습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이 아니고서는 회개할 수 없기에 그 조명하심을 따라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퍼지는 그 처절한 울음소리 다윗은 이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늘과 땅사이에 칼을 빼어 들고 예루살렘 편을 가리키고 서 있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다윗과 장로들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시여,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가 바로 내니이다. 이 목동 다윗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이 양무리들은 ... 아무것도 모르는 다만 저를 따르는 자들일 뿐입니다. 그의 입술에서 다시 한번 내가 그리고 이 백성이 누구인지가 고백되는 순간입니다. 나는 목동 다윗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양떼들입니다.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불쌍한 이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교만했던 다윗이, 백성들을 하찮게 여겼던 다윗이, 하나님만 아는 겸손한 다윗으로, 양떼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목동 다윗으로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면 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죄가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 하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지만, 단지 그의 임재 앞에 엎드리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을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왜 엎드리는 그 자리가 은혜의 자리이겠습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어야 할 그 명확한 구분을 다시금 깨닫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윗, 우리가 기대하는 다윗으로 다시금 그가 돌아왔습니다. 회개란 다시 그 분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오기 위해서는 죄를 깨달아야 하고, 죄를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들리는 그 자리가 복된 자리요, 죄를 깨닫게 하는 자리요, 죄를 고백하게 하는 자리요, 죄를 씻고 의롭게 여김을 받아 일어서는 자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자주 은혜받았다 은혜받았다 합니다. 무엇이 진정 은혜를 입은 것입니까! 알지 못했던 진리를 발견하여 속이 뻥하니 뚫리는 것이 은혜입니까! 막혀 있었던 길이 열려, 이제 다시 무엇인가를 소망할 수 있는 꿈이 생긴 것이 은혜입니까!


은혜받았다는 표현을 참 쉽고,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정녕 은혜받았다 은혜받았습니다 하는 그 자리에 속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회개의 눈물을 보지 못함은, 그 눈물을 다 쏟아낸 그 자리에 다시 채워지는 그 감격의 눈물을 보지 못함은 왜 일까요!


다윗의 고백이 깊은 여운으로 남습니다.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나는 주의 목동인데 맡기신 양무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삯꾼입니다. 다윗이 사탄의 미혹을 받아 인구조사를 하게 한 바로 그 때 ... '하나님이 왜 다시 이스라엘에게 분노하신 것일까요?'


그들의 목동으로 세운 다윗이 그들을 온전히 사랑하고, 인도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 그 백성이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또 다시 진노하신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택하신 자기 백성에게 다시는 분노하지 않으시고자 진정한 목자를 주셨습니다. 결코 한눈 팔지 않는, 배신하지 않는, 영원히 순종하는 참 목자!!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는 목자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주께서 제게 맡기신 영혼들을 돌아봅니다. 한 숨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제게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피흘 릴, 그들을 위하여 내것을 포기 할, 아니 그들을 위하여 손해보는 것 조차 제게는 너무 힘든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섬기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주님, 제 삶의 참 목자이신 주님을 잘 따르기 원합니다. 당신만 바라보며 따라가다 보면 무언가 볼 수 있는 것이 있겠지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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