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욱 목사

역대상 21장 26-27절, 22장 1절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사자를 명하시매 저가 칼을 집에 꽂았더라 // 다윗이 가로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가슴을 치는 회개에는 언제나 마음을 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입을 열어 선지자 갓에게 알립니다. 다윗에게 전하라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 하나님 앞에 엎드린 다윗에게 숨통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의지하여 나아가는 다윗에게 오르난이 나아와 엎드립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오르난은 그 땅과 소와 곡식떠는 기계와 밀을 다 바치기로 결단합니다. 순식간에 제사를 드릴 준비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을 거져 받지 않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값 없이는 취하지도 않고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거져, 알아서, 쉽사리 드려지는 예배는 없습니다. 제물이 없는 제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항상 예배하는 자의 삶과 그 마음이 함께 드려집니다.


오늘도 한 예배가 온전하게 드려지기 위하여 소리없이 헌신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그 숨겨진 이야기가 들려올 때에 우리는 여전히 감동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시간과 삶이, 그들의 달란트와 물질이 그렇게 하나님께 그들의 마음과 함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다윗이 값을 치르고 단을 쌓아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룁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이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칼을 칼집에 다시 꽃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에 퍼진 온역이 그칠 것이고, 하나님이 진노를 거두시고 다시금 말씀하실 것이라는 확신의 싸인 아니겠습니까! 전심으로 드려지는 예배에는 이렇듯 하나님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합니다. 두려움이 감사로 바뀌어집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쏟아진 하나님의 분노, 그 분노의 끝자락인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솔로몬이 지을 하나님의 성전터로 선포되는 순간입니다. "다윗이 가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죄악으로 인하여 저주받은 인생이 회개의 은총으로 거룩하다 이름하는 성도로 태어나는 것. 우리로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역사요, 은혜의 선물일 뿐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감격없이 성도로 살아가는 자들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삶이란 것이 잊어버림의 연속이기에 이 놀라운 구원의 감격 조차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임을 겸손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다시금 우리를 용서하실 것이고,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다시금 우리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인치실 것이며,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다시금 우리로 이 땅 위에 성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름부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언제나 결단하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변하지 않는 그 상황, 그 관계속으로 다시 들어갈 힘을 주께로 부터 얻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배를 누구에게 부탁하며,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과 나 사이를 중보하시는 예수님 아니겠습니까!


지난 주 예배를 마치면서 주저앉은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실패, 실패, 실패를 속으로 외치면서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텅하니 주저앉았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제게 실패의 쓴 물 만을 마시게 하십니까! 고개를 떨구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다시금 저에게 이렇게 물어옵니다. 그래, 무엇이 실패였니? 무엇이 네가 마신 쓴물이었니? 예, 이제 분명하게 알것 같습니다. 그것은 예배 자체도 ...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제 삶도, 마음도, 생각도 온전히 주께 값을 치르지 않고, 오직 나의 만족과 소망이 응답되는 위로만을 바랬던 교만한 저 자신이었습니다. 비로서 깨닫습니다. 그래 그 실패의 자리, 그 원망의 자리, 바로 그 자리가 다시 서야할 은혜의 자리인 것을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곳이 내가 너한테서 에배받기를 원하는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란다. 오! 주님! 멈추어 서지 않고서는, 주저앉지 않고서는 ... 깨닫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는 저는 여전히 죄인인 것을 다윗의 이야기를 통하여 봅니다.


언약궤를 옮길 때에도, 가슴 뜨거운 고백으로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고 다짐하던 그 때에도, 그리고 한없이 두려운 마음으로 주 앞에 엎드린 이 순간에도 다윗과 같이 저는 오직 주의 은혜와 사랑이 필요한 죄인 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진노하시는지, 왜 그렇게 STOP 소리치시는지, 왜 그렇게 칼을 뽑아 들고 노려보게 하시는지 ... 그저 나를 향한 저주고, 분노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곧 사랑이고, 은혜인 것을 깨닫습니다.


여전히 주의 은혜가 필요한 나의 오늘! 그리고 여전히 채우시는 당신의 오늘! 그래서 이 오늘이 감사의 오늘이고, 행복한 오늘이고, 다시 오지 않을 기쁨의 오늘인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 오늘도 함께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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