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욱 목사

역대상 23장 1-2절, 25-26절

"다윗이 나이 많아 늙으매 아들 솔로몬으로 이스라엘 왕을 삼고 이스라엘 모든 방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았더라 // 다윗이 이르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평강을 그 백성에게 주시고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시나니 레위 사람이 다시는 성막과 그 가운데서 쓰는 모든 기구를 멜 것이 없다 한지라"


성경을 읽다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구절을 만납니다. 오늘 이 말씀처럼 "다윗이 나이 많아 늙으매 ..." 누구든지 나이가 들어 늙어갑니다. 다윗이라고 모세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와 내가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존재로서는 하나님 앞에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늙어가는가? 무엇을 하며 늙어가는가를 유심히 살펴보면, 하나님 앞에 같은 삶의 모습은 없는 것이지요. 늙었다는 것에, 젊다는 것에, 건강하다는 것에, 혹은 건강을 잃어버린 것에 ... 너무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내가 놓여진 지금의 이 상황이 나를 주장하는 것도, 나를 증거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혹은 우리가 놓여진 그 상황을 주목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갖고, 그러한 상황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주목하십니다.


이미 늙어버린 다윗! 그는 어떻게 그의 노년을 가꾸고 있는가! 그가 보여주는 삶이 모습이 하나님의 마음에도 참 흡족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성전건축을 위한 토대를 만들기 위하여 그는 노년의 삶을 불태웠습니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그 일을 위하여 나의 삶을 불태우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 같습니다. 모두가 "나" 를 위한 삶에 목메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출연자 모두가 영화의 주연일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정말 멋진 배우는 주연같은 조연배우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의 주연일 때에도 또한 조연일 때에도 항상 한결같습니다. 오직 감독의 지시를 따라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그의 마음을 헤아리며 움직이는 정말 멋진 배우같습니다.

성전 건축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화려한 건물이라고 아무리 웅장한 건물이라고 하나님을 담아낼 수 있겠습니까! 성전 건축의 진정한 의미는 그곳에서 드려지는 예배인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은 거기까지 인 것입니다. 성전 건축을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한 다윗은 그 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자들을 구별합니다.


"다윗이 나이 많아 늙으매 아들 솔로몬으로 이스라엘 왕을 삼고 이스라엘 모든 방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았더라" 제 눈에는 이렇게 비쳐집니다. 다윗이 나이 많아 늙으매 성전을 건축할 솔로몬을 세우고, 그 전에서 섬길 자들을 구별하였더라!


레위사람 3만 8천명을 계수하여 각각 하나님의 율례대로 섬겨야 할 위치와 자리로 그들을 구별합니다. 성전건축의 토대 뿐만 아니라 그 성전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지까지 세밀하게 준비를 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유언합니다.


"...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평강을 그 백성에게 주시고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시나니 레위 사람이 다시는 성막과 그 가운데서 쓰는 모든 기구를 멜 것이 없다 ..." 선포합니다. 더는 이 언약궤를 메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전이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이 머무시는 하나님의 평강의 처소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전이 상징하는 바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누가, 무엇이 그 영원하신 하나님을 쥐어 흔들 수 있겠습니까! 그는 요동하지 않으시는 알파와 오메가 이십니다.


다윗은 물론 솔로몬에 의하여 봉헌된 그 화려하고,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보지 못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 억울한 것 아닙니까? 이 성전이 누구의 마음으로 부터 시작된 것인데, 누가 준비한 것인데 ...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하는데 쓰임 받은 한 인물이 오버랩됩니다. 모세이지요. 목이 곧은 그 백성을 40년 광야길로 인도하면서 그 누구보다 마음고생 심한 사람은 ... 죄송합니다. 제가 보기에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모세 아니였겠습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끼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모세였습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때로는 달래야 했고 (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서도), 패역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때로는 혼내며, 때로는 을르며 ...


그렇게 가나안 땅 들어가기를 원했던 그 모세 역시 결국 그 땅을 밟지 못하고 느보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정말 모세가 그 땅을 밟지 못한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지나온 다윗의 삶을 바라보며, 그리고 모세가 걸었던 그 광야의 길을 생각하며, 이 두사람이 결코 성전을 보지 못했고, 가나안 땅을 밟지 못했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성전을 보았고, 모세는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밟았습니다.


그들이 보지 못했고, 밟지 못했다면 그들의 삶이 결단코 그렇게 되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다윗에게 주어진 삶과 솔로몬에게 주어진 삶이 달랐고, 모세에게 주어진 역활과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역활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모세에게도 분명 그 성전을 보고, 그 땅을 밟는 믿음의 축복을 주셨다는 생각이 저는 너무나도 강렬하게 듭니다. 왜 입니까? 그 예루살렘 성전이, 그 약속의 땅 가나안이 보여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도성,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모세도 그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늘 아버지와 함께 했던 하나님의 사람들 아닙니까!!!! 그들은 그 영광으로 살아온 하나님의 사람들 이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오늘 이 순간 이 상황속에서도 나로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하는 이 믿음 붙들고 오늘도 힘써 충성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


하나님의 교회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리사운드 교회이기를 소망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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