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욱 목사

역대하 3장 1, 17절

최종 수정일: 2018년 10월 31일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 그 두 기둥을 외소 앞에 세웠으니 좌편에 하나요 우편에 하나라 우편 것은 야긴이라 칭하고 좌편 것은 보아스라 칭하였더라"


하나님의 전 건축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하여 시작됩니다. 역대하 3장 1절의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다윗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 그의 고백속에 선포된 그 성전이 하나님의 시간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쌓여지니 결국에는 현실속에 아름답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참으로 다윗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게됩니다.


부끄러운 허물들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나태해져 있어 본능의 욕망을 제어할 수 없을 때에 일어난 밧세바 간음사건 그리고 오랜 통치기간을 지나는 동안 어느덧 교만해진 다윗이 자신이 가진 권세를 자랑하고자 했던 인구조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윗의 인생가운데 치욕스러운 이 사건들속에서 그는 도리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그 밧세바의 태를 통하여 온 솔로몬이, 다윗이 엎드렸던 그 회개의 장소 모리아산에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이 모리아산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의미있는 장소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바로 이곳에서 독생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하나님의 시험을 받았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반복되이 나타나는 그런 은혜의 장소가 있습니다.


물론, 그 장소 자체가 특별하기 때문은 아니겠지요! 다만,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해서 체험되어지므로 의미있는 곳으로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대학교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밤에 늘 들렀던 교회 지하실이 떠 오릅니다.


어두 컴컴하고, 습기가 많이 차 곰팡이 내가 진동했던 그 지하실은 아직 믿음이 영글지 못했던 저에게 하나님의 은혜 앞에 엎드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기도가 터지고, 눈물이 샘솟는 곳!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골방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들이 역사속에 반복되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것은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 믿음을 인정받은 그곳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순종하심으로 십자가를 세우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와 그 어떤 허물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의 은혜를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그토록 흡족케 했던 다윗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죄악된 삶이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까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낙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는 후회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윗의 죄악보다 더 큰 사랑으로 그의 허물을 덮습니다.


그것이 용서의 은혜이고, 그 용서의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그 실패의 삶속에서 꽃 피워 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보는 이 성전건축의 역사입니다. 다윗의 회개가 쉬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과 인구 조사를 통하여 받은 그 심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새겨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로 회개케 하였고, 그 은혜가 그의 무너진 삶속에서도 더 크신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게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또 다시 반복되어 넘어지는 실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마다 다시 들어야 하고 새겨야 할 것이 바로 은혜의 복음입니다. 그렇치! 내가 사는 이유, 내가 서 있는 이유는 내가 실수가 없고, 온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은혜가 나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인 것을 다시 깨닫는 것입니다.


그 복음의 은혜가 우리로 다시 살게하는 것입니다. 성전 앞에 세워진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의 뜻이 새삼 마음에 새겨집니다. 야긴 "그가 세울것이다", 보아스 "그에게 능력이 있다" 성전된 우리의 삶 앞에 항상 보이는 두 기둥 그것이 곧 은혜의 기둥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하는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케 하는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야긴과 보아스는 바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말씀과 기도의 기둥인 것입니다.


그 야긴과 보아스 ... 즉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늘 만나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오늘 또 다시 그분에게 친밀한 데이트를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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