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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이형욱 목사

사도행전 26장 14-15절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26:14-15)"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영혼을 만나는데 있어서 시간, 장소, 상황을 가리시는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언제나 정확한 타이밍에 너무나도 분명한 음성으로 다가와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듣고 싶지 않다고 거부할 수 있는 음성이 아닙니다. 처음 들은 음성이라 모른척 할 수 있는 부름이 아닙니다. 그 음성을 듣지 못하기에 말을 못하는 것이지, 들려온 그 음성은 우리의 입술을 여는 힘이 있습니다.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드디어 만났습니다. 꼭 만나야 할 두 분이 드디어 만난것입니다. 그런데 이 만남이 정말 처음일까요? 예, 사울이라는 청년에게는 첫 만남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에게는 낯선 만남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합니다.


주님은 오랜동안 사울을 주목하셨고, 이 때를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려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굳이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왜 나를 핍박하느냐?, 왜 예수 믿는 자들을 괴롭히느냐?' 묻지 않으십니다.


오직 그가 들어야 할 말씀만 하십니다. "... 네가 나를 본일과 장차 네게 나타날 일에 대하여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제 너는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도장을 찍은 것입니다.

첫 만남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흔적이 새겨진 만남이었습니다.


바울은 기회가 주어질 때 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왜 입니까! 이것보다 더 큰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만날 때 비로서 내가 어떤 자인지를 깨달았고, 그분을 만날 때 비로서 진정한 사명의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자를 핍박하기 위하여 잡으러 가던 사울이 이제 예수 때문에 핍박받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그분의 역사이고, 또한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내가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


전에도 사울은 그 누구보다 열심을 내는 자였습니다. 율법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

이제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 더 수고하는 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기에 ...

오늘도 주의 은혜가 은혜이기 위하여 주 앞에 열심으로 서는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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