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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이형욱 목사

역대상 29장 1절

최종 수정일: 2018년 9월 29일

"다윗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홀로 하나님의 택하신바 되었으나 오히려 어리고 연약하고 이 역사는 크도다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우리 삶의 목적과 뜻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곧 소명이고 사명입니다. 소명이란 부를 (소)에 목숨 (명)이고, 사명이란 부릴 (사) 목숨 (명) 입니다. 둘 다 우리의 재능이나, 달란트와 같이 삶의 어떤 것이나 일부가 아닌 우리 삶의 모든 것 즉 목숨과 관련된 의미깊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무엇인가를 맡기실 때에는 우리의 그 어떤 것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나" 를 부르시는 것이고, "내게"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부름앞에 서면, 내 어떤 것으로도 그 맡기신 것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솟아나는 감동이 이런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나를 불러 주시고, 이런 나를 당신을 위하여 사용해 주시는지요~ 오! 하나님, 모든 것이 감사요, 모든 것이 기쁨이요, 모든 것이 오직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은혜가 삶을 이끄는 것입니다.


내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나로 하여금 그 부름 앞에, 생명을 다하여 즉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명을 불태우는 사명자로 서도록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오늘 1절 다윗의 고백속에 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솔로몬만의 사명이고, 소명이 아닌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 아들 솔로몬이 홀로 하나님의 택하신바 되었으나 오히려 어리고 연약하고 이 역사는 크도다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물론 솔로몬 혼자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솔로몬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지 않습니까! 택함을 입은 솔로몬은 어리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이 성전건축의 프로젝트는 거대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택하심이 있는가? 말도 안되는 것 처럼 보여지십니까? 함 생각해 보십시요.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주어졌던 사명 역시 연약한 내 힘 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처럼 보이며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다윗처럼 이 고백 하나만 놓치지 않고 붙들게 된다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여러분 이것이 사명입니다. 사명은 사람이 보이기 전에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명을 이루어가는 동안에도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보게 합니다.


그래서 사명은 그 목적과 방향이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하나의 사실을 붙들때에 모든 것을 이루시고, 공급하시는 이인 여호와 하나님을 그 사명의 길에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명자의 가슴은 그 사명으로 인하여 뜨거워집니다.


식어 버리면 포기할텐데, 그 사명은 시간이 가도, 상황이 어려워져도 결코 시들시들해 지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불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 " 다윗의 고백입니다.


그는 이미 힘을 다하여, 매우 많은 것을 드렸습니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그 삶은 숨길 수 없습니다. 한 여자를 사랑해도, 한 남자를 마음에 품어도 그 사랑하는 얼굴이며, 삶을 감출수 없는데 어떻게 하늘의 하늘이라도 품을 수 없는 그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그 삶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명에 불이 붙은 다윗의 삶은 온 백성들의 마음으로 타 들어갑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지라!" 왕이 윽박을 지르는것 같습니까? 왕의 권력으로 몰아부치는 위협처럼 들려오십니까? 다윗과 함께 선 온 회중들이 그렇게 부담감으로 그의 말을 받아드렸을까요?


역대상 기자는 백성들의 반응을 세 단어로 간결하게 정리합니다. "다 즐거이 드리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고 기뻐하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그것은 억지가 아닌 자원으로, 부담감이 아닌 즐거움으로, 후회가 아닌 기쁨으로 입니다.


다윗이 설득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그가 왕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명령이라면 바칠수는 있겠지만 기쁨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바울은 그가 고린도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경험했던 한 사건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3-5)"


사람의 마음은 결코 말로 설득되지 않습니다. 현혹될 수 있고, 미혹될 수 있지만 믿음의 삶과 행동은 결코 사람의 힘이 아닌 오직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설득되어지고, 그 삶이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사명자의 삶이 어떻게 인도함을 받는가 그래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결코 말의 능력, 경험의 힘, 관계의 파워가 아닌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이 강권적으로 그 사명을 이루어 가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자원하여 바치므로 기뻐하고, 그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따라야 할 지도자들의 모습에 은혜를 받았기에 기뻐하고, 그것을 본 다윗은 이런 동역자들과 함께 이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어 기뻐하는 것이 아닐까요 ^^*


물론, 역대상 기자는 밝히지 않지만 분명 또 한분이 이 모습을 보며 기뻐했음을 우리는 짐작 합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명은 이렇듯 전파되어 갑니다. 다윗에게서 솔로몬에게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로, 백성들에게로 ...감사 또 감사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 겸손히 제 자신의 상황을 투영합니다. 내게 기술이 없어서, 혹은 실력이 부족해서, 혹은 경험이나 네트웍이 약해서 ...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사명이 사명되지 않아서 입니다. 그분의 부르심 앞에 진실함으로 매순간 "예"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하나님 앞에 섭니다. 주여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오나 주께서 부르셨사오니, 주께서 맡기셨사오니 이제 온 몸과 마음으로 맡기신 이 일이 사명될 수 있도록 목놓아 외칩니다. "예스, Jesus" 사명자로 설 수 있도록 주께서 이 마음 붙들어 주시옵소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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